Zizhi Tongjian — Comprehensive Mirror in Aid of Governance · Sima Guang, 1084
송 사마광 — 戰國부터 五代까지 1362년 편년체 통사. 294권. 동아시아 사학의 정점 — 라틴 Tacitus·Livy 와 비견
北宋 元豐 7 (1084)進獻
司馬光 (1019-1086)저자
294卷분량
1362年(B.C.403~A.D.959)
★ TEXTUS · 텍스트 개관
《자치통감》은 북송 신종(神宗) 황제의 명을 받아 사마광이 19년에 걸쳐 편찬한 編年體 通史. "통치에 자료가 되는 통감(通鑑 = 통하는 거울)"이라는 제목 그대로, 군주가 정치를 함에 있어 거울로 삼을 사례를 시간 순으로 정렬했다.
대상 시기: 戰國 시대 三家分晉(B.C.403)부터 五代 後周 멸망(A.D.959)까지 1362년. 본기·열전체인 《史記》와 달리 "年·月·日"로 사건을 배치 — 라틴 Livy 의 《Ab Urbe Condita》 와 같은 편년 방식.
핵심 특징은 "臣光曰" 사론. 사마광이 사건마다 자신의 도덕적·정치적 평가를 붙임 — 이는 라틴 Tacitus 《Annālēs》의 sententia·그리스 Thucydides 의 정치 분석에 비견된다. 朱熹가 이를 윤리적으로 재편집한 것이 《資治通鑑綱目》이며, 한반도에서는 《東國通鑑》(成宗朝)이 그 모델을 따랐다.
時代北宋 治平 3 (1066) 시작 ~ 元豐 7 (1084) 완성, 19년著者司馬光 (1019-1086), 字 君實, 號 涑水先生參與劉攽·劉恕·范祖禹 등 (사마광 主筆)期間 (記事)B.C.403 (周 威烈王 23) ~ A.D.959 (後周 顯德 6) · 1362년韓國 영향高麗 후기·朝鮮 経筵의 표준 텍스트, 《東國通鑑》《高麗史》 모델
STRUCTURA · 구성
周紀 5卷 · B.C.403 ~ B.C.255 (전국 시대 끝)
秦紀 3卷 · B.C.255 ~ B.C.207 (진의 통일과 멸망)
漢紀 60卷 · B.C.206 ~ A.D.220 (前漢·後漢)
魏紀 10卷 · 三國 시대
晉紀 40卷 · 西晉·東晉
宋紀·齊紀·梁紀·陳紀 · 南朝
北朝紀 (隋紀 8卷) · 隋의 통일
唐紀 81卷 · 唐 (가장 많은 분량)
後梁·後唐·後晉·後漢·後周 (五代紀 22卷) · 唐 멸망 후 5대 50여년
周紀一 · IPS+Atlas 발행면
卷一 周紀一 · 威烈王二十三年 카드 0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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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열왕 23년에,
처음으로명하여진의 대부위사·조적·한건을
제후로 세웠다.
사마광은 말한다:
신은 듣건대,
천자의 직분에는 예보다 큰 것이 없고,
예에는 분보다 큰 것이 없으며,
분에는 명보다 큰 것이 없다.
In the twenty-third year,
for the first time, a command appointedthe high ministers of Jin,
Wei Si, Zhao Ji, and Han Qian,
asfeudal lords.
Sima Guang comments:
I have heard that
nothing in the Son of Heaven's office is greater than ritual order,
nothing in ritual is greater than distinction,
and nothing in distinction is greater than name/rank.
이 때東南風이 급하게 불었다. 黃蓋가 10척의 배를 가장 앞에 두고강 가운데에서돛을 올리니, 나머지 배들도차례로 따라갔다. 黃蓋가모든 배를 풀어동시에 불을 놓으니, 火氣 거세고 바람 사나워, 배는 화살 같이 빨라北軍의 배를 모두 태웠다.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치솟았다. 사람과 말 중 타죽거나 빠져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曹操의 군대가 크게 무너졌다. 周瑜 등이정예로 그 뒤를 따르고, 북을 치며 크게 진격했다.
태종이 위징에게 이렇게물었다. “명군과 암군은 무엇이 다른가?” 위징은대답했다. “임금이 밝아지는 까닭은여러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고, 어두워지는 까닭은한쪽 말만 치우쳐 믿기 때문입니다. 《시경》에도 ‘옛사람의 말에 풀 베고 나무하는 이에게도 묻는다’고 했습니다. 옛적요순의 정치는사방의 문을 열고, 사방의 눈을 밝히고, 사방의 귀를 통하게 했으므로, 성인의 밝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반면진 이세는자신을 숨기고, 소원하고 낮은 사람들을 막아 두며 조고 한 사람만 믿었습니다. 마침내천하가무너지고 반란이 일어났는데도그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임금은 여러 의견을 들으면 밝아지고, 한쪽 말만 믿으면 어두워집니다.” 태종은 “좋다”고 말했다.
安祿山이 范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듣는 자들이모두 놀랐으나감히 믿지 못했다. 河北 24군이 바람만 보고 와해되어, 한 사람도 감히 막아 싸우는 자가 없었다. 안록산이15만 무리를 거느리고남쪽洛陽으로 향했다. 천하가 平和를 누린 지 오래라, 백성들은여러 세대 동안 兵革(전쟁)을 모르다가, 갑자기 范陽에서 軍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원근이 진동했다.
★ 책의 마지막 사건 — 後周 世宗의 죽음(959). 그 이듬해 趙匡胤이 송을 세우니, 사마광 본인이 송의 신하. 사마광은 "五代가 끝나고 송이 시작되기 직전"에서 책을 끝맺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송의 정통성을 암시한다. Tacitus 가 《Annālēs》를 Nero 의 죽음에서 끝맺는 것과 同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