資治通鑑

자치통감 · 司馬光 (Sima Guang) · 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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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본 소장 추천: 자치통감 (완역본 전32권)

사마광 저 / 권중달 역 · 이회문화사 · 1,362년 역사의 거울이자 제왕학의 최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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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 (Subject) 서술어 (Predicate) 목적어 (Object) 보어 (Complement) 수식어 (Modifier) 부사 (Adverbial) 어조사/허사 (Particle)
단락 1 / 4 資治通鑑 卷一 周紀一 · ztg-zhouji-001
二十 二十 三年 三年 上距 상거 《 春秋 春秋 》 獲麟 획린 七十 七十 八年 八年 距 거 《 左傳 左傳 》 趙襄子 조양자 惎 기 智伯 지백 事 사 七十 七十 一年 一年 惎 기 毒也 독야 音其 音其 冀翻 冀翻 初 초 命 명 晉大夫 진대부 魏斯 魏斯 、 趙籍 趙籍 、 韓虔 韓虔 為 위 諸侯 제후 此 차 溫公 溫公 書法 書法 所由 所由 始也 始也 魏之先 위지선 畢公 畢公 高後 高後 與周 여주 同姓 동성 其苗裔 기묘예 曰 왈 畢萬 필만 始 시 封 봉 於魏 어위 至魏舒 지위서 始 시 為 위 晉正卿 진정경 三世 삼세 至斯 지사 趙之先 조지선 造父後 조부후 至叔帶 지숙대 始 시 自周 자주 適晉 적진 至趙夙 지조숙 始 시 封 봉 於耿 어경 至趙盾 지조돈 始 시 為 위 晉正卿 진정경 六世 육세 至籍 지적 韓之先 한지선 出於 出於 周武 周武 王 王 至韓 至韓 武子 武子 事晉 사진 封 봉 於韓原 어한원 至韓厥 지한궐 為 위 晉正卿 진정경 六世 육세 至虔 지건 三家者 삼가자 世 세 為 위 晉大夫 진대부 於周 어주 則 즉 陪臣也 배신야 周室 주실 既 기 衰 쇠 晉 진 主 주 夏盟 하맹 以 이 尊 존 王室 왕실 故 고 命 명 之 지 為 위 伯 백 三卿 삼경 竊 절 晉之權 진지권 暴蔑 폭멸 其君 기군 剖分 부분 其國 기국 此 차 王法 왕법 所必 所必 誅也 誅也 威烈王 위열왕 不惟 불유 不能 불능 誅 주 之 지 又 우 命 명 之 지 為 위 諸侯 제후 是 시 崇獎 숭장 奸名 간명 犯分 범분 之 지 臣也 신야 《 通鑑 通鑑 》 始 시 於此 어차 其 기 所以 소이 謹 근 名分 명분 歟 여
🌿 자연스러운 현대어 번역 (Natural Register)
위열왕 23년은 《춘추》의 ‘획린’으로부터 78년 뒤이고, 《좌전》에 보이는 조양자의 지백 모해 사건으로부터 71년 뒤이다. 이때 처음으로 진나라 대부 위사·조적·한건을 제후로 임명하였다. 이 세 가문은 대대로 진나라의 대부였으며, 주 왕실에서 보면 제후의 신하인 배신이었다. 주 왕실이 쇠한 뒤 진나라는 중원의 회맹을 주도하며 왕실을 받들었으므로 패자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세 경은 진나라의 권력을 빼앗고 그 임금을 업신여겼으며 나라를 쪼개 나누었으니, 이는 왕법으로 반드시 주벌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위열왕은 그들을 주벌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제후로 임명하였다. 이것은 명분을 어지럽히고 직분의 경계를 범한 신하들을 높이고 장려한 일이었다. 《자치통감》이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은 명분을 삼가고 바로잡으려는 뜻일 것이다.
💡 심층 사유 및 통치철학 해제 (Philosophical Register)
위열왕 23년에 주 왕실은 진나라의 세 대부, 위사·조적·한건을 제후로 세웠다. 사마광은 이 사건을 《자치통감》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세 가문은 본래 제후국 진나라의 신하였으나, 진나라의 권력을 빼앗고 임금을 억누르며 나라를 나누었다. 주 왕은 이들을 처벌하기는커녕 제후로 인정했으니, 이는 명분과 직분을 어지럽힌 신하들을 공인한 일이었다.
단락 2 / 4 資治通鑑 卷一 周紀一 · ztg-zhouji-002
臣光曰 신 광 왈 臣聞 신 문 天子 天子 之職 之職 莫大於 막대어 禮 예 禮 예 莫大於 막대어 分 분 分 분 莫大於 막대어 名 명 分 분 扶問翻 부문번 下同 하동 何謂 하위 禮 예 紀綱 기강 是也 시야 何謂 하위 分 분 君、臣 군·신 是也 시야 何謂 하위 名 명 公 公 、 侯 侯 、 卿 卿 、 大夫 大夫 是也 시야 夫以 부 이 四海 四海 之廣 之廣 夫以 부 이 音扶 음 부 兆民 兆民 之衆 之衆 受制 수제 於一人 어일인 雖 수 有 유 絕倫 絕倫 之力 之力 高世 高世 之智 之智 莫不 막불 奔走 분주 而 이 服役 복역 者 자 豈非 기비 以禮 이례 為 위 之 지 紀綱 기강 哉 재 是故 시고 天子 천자 統 통 三公 삼공 統 통 他綜翻 타종번 三公 삼공 率 솔 諸侯 제후 諸侯 제후 制 제 卿大夫 경대부 卿大夫 경대부 治 치 士庶人 사서인 治 치 直之翻 직지번 貴 귀 以 이 臨 림 賤 천 賤 천 以 이 承 승 貴 귀 上 상 之 지 使 사 下 하 猶 유 心腹 심복 之 지 運 운 手足 수족 根本 근본 之 지 制 제 支葉 지엽 下 하 之 지 事 사 上 상 猶 유 手足 수족 之 지 衞 위 心腹 심복 支葉 지엽 之 지 庇 비 本根 본근 然後 연후 能 능 上下 상하 相 상 保 보 而 이 國家 국가 治安 치안 治 치 直吏翻 직리번 故曰 고왈 天子 天子 之職 之職 莫大於 막대어 禮 예 也 야
🌿 자연스러운 현대어 번역 (Natural Register)
신 사마광은 말한다. 천자의 직분 가운데 예보다 큰 것은 없고, 예 가운데 분보다 큰 것은 없으며, 분 가운데 명보다 큰 것은 없다. 예란 무엇인가? 기강이다. 분이란 무엇인가? 군주와 신하의 구별이다. 명이란 무엇인가? 공·후·경·대부라는 공적 지위의 이름이다. 천하는 넓고 백성은 많지만 모두 한 사람의 통제를 받는다. 비범한 힘과 뛰어난 지혜를 지닌 사람도 명령을 따라 움직이며 복역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이것이 어찌 예가 그 질서의 기강이 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천자는 삼공을 통솔하고, 삼공은 제후를 거느리며, 제후는 경과 대부를 통제하고, 경과 대부는 사와 서인을 다스린다. 높은 이는 낮은 이를 이끌고 낮은 이는 높은 이를 받든다. 위가 아래를 부리는 것은 몸통이 손발을 움직이고 뿌리가 가지와 잎을 제어하는 것과 같으며, 아래가 위를 섬기는 것은 손발이 몸통을 지키고 가지와 잎이 뿌리를 보호하는 것과 같다. 그 뒤에야 위아래가 서로 보전하고 국가가 안정된다. 그러므로 천자의 직분 가운데 예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 심층 사유 및 통치철학 해제 (Philosophical Register)
사마광에게 정치는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천자의 가장 큰 직분은 예를 세우는 것이고, 예의 핵심은 군신의 경계이며, 그 경계는 공·후·경·대부라는 이름으로 드러난다. 이름과 지위가 바르게 놓일 때 위는 아래를 이끌고 아래는 위를 받들며, 국가는 하나의 몸처럼 보전된다.
단락 3 / 4 資治通鑑 卷一 周紀一 · ztg-zhouji-003
文王 문왕 序 서 《易》 역 以 이 《 乾 乾 》、《 坤 坤 》 為 위 首 수 孔子 공자 繫之 계지 曰 왈 天尊 天尊 地卑 地卑 , 乾坤 乾坤 定矣 定矣 。 卑高 卑高 以陳 以陳 , 貴賤 貴賤 位矣 位矣 。 繫 繫 , 戶計 戶計 翻 翻 。 言 언 君臣 君臣 之位 之位 猶 유 天地 天地 之不 之不 可易 可易 也 也 《 春秋 春秋 》 抑 억 諸侯 제후 尊 존 王室 왕실 王人 왕인 雖 수 微 미 序 서 於 어 諸侯 諸侯 之上 之上 以是 이시 見 현 聖人 성인 於君 於君 臣之 臣之 際 際 未嘗不 미상불 惓惓也 권권야 惓 惓 , 逵員 逵員 翻 翻 。 《 漢 漢 · 劉向 劉向 傳 傳 》 忠臣 忠臣 畎畝 畎畝 , 猶不 猶不 忘君 忘君 惓惓 惓惓 之義 之義 也 也 。 惓惓 권권 猶言 유언 勤勤也 근근야 非有 비유 桀 桀 、 紂之 紂之 暴 暴 湯 湯 、 武之 武之 仁 仁 人 인 歸 귀 之 지 天 천 命 명 之 지 君臣 君臣 之分 之分 當 당 守節 수절 伏死 복사 而已矣 이이의 是故 시고 以 이 微子 미자 而 이 代 대 紂 주 則 즉 成湯 성탕 配 배 天矣 천의 《 史記 史記 》 商帝乙 상제을 生 생 三子 삼자 長曰 長曰 微子 微子 啓 啓 , 次曰 次曰 中衍 中衍 , 季曰 季曰 紂 紂 。 紂之母 주지모 為 위 后 후 帝乙 제을 欲 욕 立 립 啓 계 為 위 太子 태자 太史 태사 據法 거법 爭之 쟁지 曰 왈 有妻 有妻 之子 之子 , 不可 不可 立妾 立妾 之子 之子 。 乃 내 立 립 紂 주 紂 주 卒 졸 以暴虐 이포학 亡 망 殷國 은국 孔 孔 [ 鄭 鄭 ] 玄義 玄義 曰 曰 物之 物之 大者 大者 莫若 莫若 於天 於天 ; 推父 推父 比天 比天 , 與之 與之 相配 相配 , 行孝 行孝 之大 之大 , 莫大 莫大 於此 於此 ; 所謂 所謂 「 嚴父 嚴父 莫大 莫大 於配 於配 天 天 」 也 也 。 又孔 又孔 氏曰 氏曰 《 禮記 禮記 》 稱萬 稱萬 物本 物本 乎天 乎天 , 人本 人本 乎祖 乎祖 。 俱為 俱為 其本 其本 , 可以 可以 相配 相配 , 故王 故王 者皆 者皆 以祖 以祖 配天 配天 。 《 諡法 諡法 》 除殘 除殘 去虐 去虐 曰湯 曰湯 。 然 연 諡法 시법 起 기 於周 어주 蓋 개 殷人 은인 先有 선유 此號 차호 周人 주인 遂 수 引 인 以為 이위 諡法 시법 分 分 , 扶問 扶問 翻 翻 。 長 長 , 知兩 知兩 翻 翻 。 卒 卒 , 子恤 子恤 翻 翻 。 以 이 季札 계찰 而 이 君 군 吳 오 則 즉 太伯 태백 血食矣 혈식의 吳王 吳王 壽夢 壽夢 有 유 子四人 자사인 長曰 長曰 諸樊 諸樊 , 次曰 次曰 餘祭 餘祭 , 次曰 次曰 餘昩 餘昩 , 次曰 次曰 季札 季札 。 季札 계찰 賢 현 壽夢 수몽 欲 욕 立 립 之 지 季札 계찰 讓 양 不可 불가 於是 어시 立 립 諸樊 제번 諸樊 제번 卒 졸 以 이 授 수 餘祭 여제 欲 욕 兄弟 형제 以次 이차 相傳 상전 必 필 致國 치국 於季札 어계찰 季札 계찰 終 종 讓 양 而 이 逃之 도지 其後 기후 諸樊 諸樊 之子 之子 光 光 與 여 餘昩 餘昩 之子 之子 僚 僚 爭 쟁 國 국 至於 至於 夫差 夫差 吳 오 遂 수 以亡 이망 宗廟 宗廟 之祭 之祭 用 용 牲 생 故曰 고왈 血食 혈식 太伯 태백 吳立 吳立 國之 國之 君 君 范甯曰 범녕왈 太者 太者 , 善大 善大 之稱 之稱 ; 伯者 伯者 , 長也 長也 。 周太 周太 王之 王之 元子 元子 , 故曰 故曰 太伯 太伯 。 陸德 陸德 明曰 明曰 壽夢 壽夢 , 莫公 莫公 翻 翻 。 餘祭 餘祭 , 側介 側介 翻 翻 。 餘昩 餘昩 , 音末 音末 。 然 연 二子 이자 寧 녕 亡國 망국 而 이 不為者 불위자 誠以 성이 禮之 禮之 大節 大節 不可 불가 亂也 란야 故曰 고왈 禮 예 莫大於 막대어 分也 분야
🌿 자연스러운 현대어 번역 (Natural Register)
문왕은 《역》을 배열하면서 《건》과 《곤》을 첫머리에 두었다. 공자는 거기에 말을 붙여,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곤이 정해지고, 낮고 높음이 배열되자 귀하고 천한 자리가 정해졌다.”고 하였다. 이는 군신의 자리가 하늘과 땅처럼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춘추》는 제후를 억제하고 왕실을 높였으며, 왕실의 사자가 비록 미미해도 제후보다 위에 배열하였다. 이로써 성인이 군신의 경계에 얼마나 간절히 마음을 썼는지 알 수 있다. 걸·주 같은 폭정과 탕·무 같은 인덕, 민심의 귀의와 천명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군신의 분수에서는 마땅히 절의를 지키고 죽음으로써 지켜야 할 뿐이다. 미자가 주왕을 대신했다면 성탕은 하늘에 배향되었을 것이고, 계찰이 오나라 임금이 되었다면 태백의 종묘 제사는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차라리 나라가 망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예의 큰 절목을 어지럽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 가운데 분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 심층 사유 및 통치철학 해제 (Philosophical Register)
사마광은 《역》과 《춘추》, 미자와 계찰의 고사를 통해 군신의 경계가 가볍게 바뀔 수 없다고 말한다. 천지의 높고 낮음처럼 정치의 자리도 정해져 있으며, 성인은 그 질서를 끝까지 중시했다. 예외는 폭군과 성왕, 민심과 천명이 함께 작동하는 극단적 경우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예의 핵심은 분을 지키는 데 있다.
단락 4 / 4 資治通鑑 卷一 周紀一 · ztg-zhouji-004
夫 부 禮 예 辨 변 貴賤 귀천 序 서 親疏 친소 裁 재 羣物 군물 制 제 庶事 서사 非 비 名 명 不 불 著 저 非 비 器 기 不 불 形 형 名 명 以 이 命 명 之 지 器 기 以 이 別 별 之 지 夫 夫 , 音扶 音扶 。 別 別 , 彼列 彼列 翻 翻 。 然後 연후 上下 상하 粲然 찬연 有 유 倫 륜 此 차 禮之 禮之 大經 大經 也 야 名器 명기 旣 기 亡 망 則 즉 禮 예 安得 안득 獨 독 在哉 재재 昔 석 仲叔 仲叔 于奚 于奚 有 유 功 공 於衞 어위 辭 사 邑 읍 而 이 請 청 繁纓 번영 孔子 공자 以為 이위 不如 불여 多 다 與 여 之 지 邑 읍 惟 유 名與器 명여기 不可以 불가이 假 가 人 인 君 군 之 지 所司也 소사야 政 정 亡 망 則 즉 國家 국가 從 종 之 지 《 左傳 左傳 》 衞孫 衞孫 桓子 桓子 帥 솔 師 사 與 여 齊師 제사 戰 전 于新築 우신축 衞師 위사 敗績 패적 新築 新築 人仲 人仲 叔于 叔于 奚 奚 救 구 孫桓子 손환자 桓子 환자 是以 시이 免 면 旣而 기이 衞人 위인 賞 상 之 지 邑 읍 辭 사 請 청 曲縣 曲縣 、 繁纓 繁纓 以朝 이조 許 허 之 지 孔子 공자 聞 문 之 지 曰 왈 不如 不如 多與 多與 之邑 之邑 , 惟名 惟名 與器 與器 不可 不可 以假 以假 人 人 。 繁纓 번영 馬飾也 마식야 繁 번 馬鬣 馬鬣 上飾 上飾 纓 영 馬膺 馬膺 前飾 前飾 《 晉志 晉志 註 註 》 曰 曰 纓在 纓在 馬膺 馬膺 如索 如索 帬 帬 。 繁 繁 , 音蒲 音蒲 官翻 官翻 。 纓 纓 , 伊盈 伊盈 翻 翻 。 索 索 , 昔各 昔各 翻 翻 。 衞君 위군 待 대 孔子 공자 而 이 為政 위정 孔子 공자 欲 욕 先 선 正 정 名 명 以為 이위 名 명 不 불 正 정 則 즉 民 민 無所 무소 措 조 手足 수족 見 見 《 論語 論語 》。 夫 부 繁纓 번영 小物也 소물야 而 이 孔子 공자 惜 석 之 지 正名 정명 細務也 세무야 而 이 孔子 공자 先 선 之 지 先 先 , 悉薦 悉薦 翻 翻 。 誠以 성이 名器 명기 旣 기 亂 란 則 즉 上下 상하 無以 무이 相保 상보 故也 고야 夫 부 事 사 未有不 미유불 生 생 於微 어미 而 이 成 성 於著 어저 聖人 聖人 之慮 之慮 遠 원 故 고 能 능 謹 근 其微 기미 而 이 治 치 之 지 治 治 , 直之 直之 翻 翻 ; 下同 下同 。 衆人 衆人 之識 之識 近 근 故 고 必 필 待 대 其著 기저 而後 이후 救 구 之 지 治 치 其微 기미 則 즉 用力 용력 寡 과 而 이 功 공 多 다 救 구 其著 기저 則 즉 竭力 갈력 而 이 不能 불능 及也 급야 《 易 易 》 曰 曰 履霜 履霜 堅冰 堅冰 至 至 , 《 坤 坤 》 初六 初六 《 爻辭 爻辭 》。 《 象 象 》 曰 曰 履霜 履霜 堅冰 堅冰 , 陰始 陰始 凝也 凝也 。 馴致 馴致 其道 其道 , 至堅 至堅 冰也 冰也 。 《 書 書 》 曰 曰 一日 一日 二日 二日 萬幾 萬幾 , 《 皋陶 皋陶 謨 謨 》 之辭 之辭 。 孔安 孔安 國 國 《 註 註 》 曰 曰 幾 幾 , 微也 微也 。 言 언 當 당 戒懼 계구 萬事 萬事 之微 之微 幾 幾 , 居依 居依 翻 翻 。 謂 위 此類 차류 也 야 故曰 고왈 分 분 莫大於 막대어 名也 명야 分 分 , 扶問 扶問 翻 翻 。
🌿 자연스러운 현대어 번역 (Natural Register)
무릇 예는 귀천을 분별하고 친소를 배열하며, 여러 사물을 재단하고 온갖 일을 제어한다. 그러나 이름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고, 제도적 기물이 없으면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이름으로 지위를 부여하고 기물로 등급을 구별한 뒤에야 위아래가 분명하게 질서를 갖는다. 이것이 예의 큰 법도이다. 명과 기가 이미 무너지면 예가 어찌 홀로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옛날 중숙우해가 위나라에 공을 세우자 그는 봉읍을 사양하고 번영을 청하였다. 공자는 차라리 봉읍을 더 많이 주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오직 명과 기는 남에게 빌려줄 수 없으니, 군주가 직접 관장해야 할 것이다. 정치 질서가 무너지면 국가도 그 뒤를 따라 무너진다. 위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정치를 맡기려 하자 공자는 먼저 이름을 바로잡고자 했으며,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백성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고 보았다. 번영은 작은 물건이지만 공자는 그것을 함부로 허락하지 않았고, 정명은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공자는 그것을 우선하였다. 이는 명과 기가 어지러워지면 위아래가 서로 보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릇 일은 미세한 데서 생겨나 뚜렷한 결과로 커진다. 성인은 멀리 내다보기 때문에 미세한 조짐을 삼가 다스릴 수 있고, 보통 사람은 시야가 짧기 때문에 반드시 일이 뚜렷해진 뒤에야 구하려 한다. 미세한 조짐을 다스리면 적은 힘으로 큰 성과를 얻지만, 일이 뚜렷해진 뒤 구하려 하면 힘을 다해도 미치지 못한다. 《역》의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는 말과 《서》의 “하루 이틀 사이에도 만 가지 기미가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분 가운데 명보다 큰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 심층 사유 및 통치철학 해제 (Philosophical Register)
예는 추상 규범만으로 서지 않는다. 지위를 부르는 이름과 등급을 드러내는 기물이 있어야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봉토보다 번영이라는 상징물을 더 경계했고, 정치의 첫 과제로 정명을 내세웠다. 작은 이름의 혼란은 결국 큰 정치의 붕괴가 된다. 성인은 일이 커진 뒤가 아니라 아직 미세할 때 바로잡는다.